비지정문화재 청연사
- 홍보팀
- 증평문화재
- 1202
- 2020-11-26
증평읍 남차1리 숯고개마을 건너편 산기슭 신경행 묘역 아래 있다. 영산(靈山) 신씨(辛氏) 후손들이 조()은(釣隱) 신경행(辛景行 : 1547~1623)을 봉향하는 사당을 1992년 건립하여 청연사(淸然祠)라 명명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정월 7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으며 청연사 옆에는 신경행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신경행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움으로 1593년(선조26) 한산군수(韓山郡守)가 됐고 1596년(선조29) 이몽학(李夢學)의 난을 평정하므로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책록돼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조정의 중요직에 봉직하다가 1608년(선조41) 충청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 종2품 무관)에 이르렀다. 이후 청안에 낙향해 조은정(釣隱亭)과 운수정(雲水亭)을 짓고 유유자적 하다가 77세로 숨졌다.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추증(追贈)됐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정월 7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으며 청연사 옆에는 신경행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신경행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움으로 1593년(선조26) 한산군수(韓山郡守)가 됐고 1596년(선조29) 이몽학(李夢學)의 난을 평정하므로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책록돼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조정의 중요직에 봉직하다가 1608년(선조41) 충청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 종2품 무관)에 이르렀다. 이후 청안에 낙향해 조은정(釣隱亭)과 운수정(雲水亭)을 짓고 유유자적 하다가 77세로 숨졌다.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추증(追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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